날마다 주님과 – 생명 축제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2012-01-24 화)

[ 요한복음 6:41 - 6:49 ]
4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 본문해설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41-42) : 유대인들이 수군거렸다는 것은 예수님의 육신적 존재로서만 인식하고 있었을 뿐 그 분의 신적 존재(신성)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을 자처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그 분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54) : 여기에서 ‘먹고’, ‘마시는’ 행위에 대한 표현은 성부 하나님께서 이끈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다.
▧ 말씀적용

하나님의 이끄심에 기꺼이 반응해야 합니다(41-51절)
그날이 오면 누군가는 영원한 ‘살림’의 기쁨을 맛볼 터입니다. 그날이 오면 누군가는 자신의 선택을 경멸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제공받게 되는 떡을 보고 믿고 먹는 자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관계에 매여 그것을 멸시하는 자 사이에는 마지막 날에 결코 건널 수 없는 갈림의 길이 놓이게 될 것입니다. 광야에서 초자연적으로 제공되었던 만나를 먹었던 이들도 영원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기적에 의존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해 자발적이고도 책임 있게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듣고 배운’다는 것이 갖는 의미가 이러합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의 생명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음으로 영원한 살림의 길을 가십시오.

허황된 인생은 되지 말아야지요(52-59절)
허황된 믿음이 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지만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삶을 현실로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지상의 교회가 도가 지나친 열정에 휩싸여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까닭에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않는 현실적인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허황된 믿음이란 결국 엉뚱한 종교놀이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허항된 인생’은 되지 않아야지요. 영원한 생명은 믿는 자에게, 그리고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곧 그 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감수하시면서까지 기꺼이 제정하신 생명 축제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믿음의 길을 걷는 오늘 하루가 되십시오.
▧ 오늘의 기도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매여 영원한 생명의 떡을 보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여 외면하는 치명적인 생의 실수를 범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대학 신입생 그리고 직장 초년생들이 새로운 조직과 상황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울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1 5 3 Questions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본문이 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나의 삶 가운데 믿음의 길을 올곧게 걷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즉 허황된 인생으로 전락하도록 이끄는 요소들은 무엇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Mailing service : SWIM | Tel : 02-796-3217 | Email : swim@swim.org | Update : 김인균 SWIM
큐티 본문 자동 RSS 발행 (by 파파존스@gyongsu)

날마다 주님과 – 새해에도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걸으십시오 (2012-01-23 월)

[ 요한복음 6:28 - 6:40 ]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 본문해설

나는 생명의 떡이니(35) : 이 구절은 요한복음서에 계속해서 나오는 ‘나는…이다’라는 일련의 선언들 중 첫 번째 것이다. 이후 8장 12절과 10장 7, 9, 11, 14절, 그리고 14장 6절과 15장 1, 5절에 계속해서 나온다. 이 땅의 모든 떡은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마찬가지로 또 배가 고프게 하지만, 이 ‘생명의 떡’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양식으로써 예수님의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정체성과 역할을 상징한다.
▧ 말씀적용

인생의 답은 생명의 떡입니다(28-35절)
우리는 왜 여전히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것일까요? 나를 경험한 자는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선언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허상에 가깝거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그 무엇인 것은 아닌가 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듣고서도 여전히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문제들에 매몰되어 있었던 갈릴리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다시 정신 차리고 흔들리던 마음을 추스르십시오. 그리고 ‘나는 생명의 떡이라’는 예수님의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정의적 선포에 집중하십시오. 이 선포를 통해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필요에 대한 가장 적실하면서도 유일한 답이심을 드러내신 까닭입니다. ‘내게 오라’는 예수님의 초청에 신실하게 반응하는 오늘 하루 걸음이 되십시오.

영원한 생명의 길을 선택하십시오(36-40절)
우리 삶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요?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의 마음의 방향은 ‘아들’이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인 까닭이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백성들을 자기 아들에게 맡기셨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무한 책임의 역할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순종으로 감당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초청에 대한 반응에 따라, 즉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 자’와 ‘보고 믿는 자’의 길은 마지막 날에 판가름 날 것입니다. 그 분의 초청에 기꺼이, 그리고 신신하게 반응함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걷는 오늘 하루, 새로운 한 해가 되십시오.
▧ 오늘의 기도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생명의 교제의 축복이 올해에도 계속되게 하소서.

북경이 중국의 수도로서 문화와 경제면에서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여전히 종교적인 억압에 놓여있는데, 파송된 선교사님들을 공안의 위협에서 지켜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게 하소서.

1 5 3 Questions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초청에 대한 나의 반응은 무엇이었고, 또 어떠했습니까?
지금 나의 시선을 빼앗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한번 써 보십시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을 고민하고 정리해 보십시오.
Mailing service : SWIM | Tel : 02-796-3217 | Email : swim@swim.org | Update : 김인균 SWIM
큐티 본문 자동 RSS 발행 (by 파파존스@gyongsu)

날마다 주님과 – 시편묵상 (2012-01-22 주일)

[ 시편 109:1 - 109:31 ]
1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2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3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5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6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7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1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12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13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14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15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16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17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18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19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20 이는 나의 대적들이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21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22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23 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24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25 나는 또 그들의 비방 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

26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27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8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29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

30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31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 본문해설


▧ 말씀적용

▧ 오늘의 기도

Mailing service : SWIM | Tel : 02-796-3217 | Email : swim@swim.org | Update : 김인균 SWIM
큐티 본문 자동 RSS 발행 (by 파파존스@gyongsu)

날마다 주님과 – 이미와 아직 둘 다에 관심해야 합니다 (2012-01-21 토)

[ 요한복음 6:16 - 6:27 ]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 본문해설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18) : “길이가 21km, 폭이 13km에 달하는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210m가 낮은 내륙 분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언덕과 산들로 둘러싸였으며 서편 해안은 600m, 동편 해안은 1,200m 이상으로 높다. 갈릴리 바다에는 오후마다 동서 계곡을 따라 서쪽에서 유입되는 지중해의 시원한 공기가 분지에서 뜨거워진 광야의 공기와 충돌하면서 자주 강한 바람과 폭우가 일게 된다”(「그말씀」2010년 10월 호 참조). 갈릴리 어부 출신 제자들은 이미 이 바람과 폭우에 익숙해 있었을 것이다.
▧ 말씀적용

주님의 임재를 확신하십시오(16-21절)
믿음이란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심에 대한 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목격하고도 그 분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 없어 두려움에 빠졌던 제자들처럼 오늘 우리 자신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 일상 가운데 불어오는 세속주의의 풍랑으로 말미암은 고난으로 종종 흔들리는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둠과 파도와 두려움에 직면했던 제자들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격려 섞인 명령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의 시선이 주님께로부터 멀어지는 순간들이 있었을지라도 그 분께서는 한 순간도 우리를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신 까닭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한다면 우리를 위협하는 세상의 힘이 아무리 강해 보일지라도 잠시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결국 목적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확신하십시오. 이 땅의 교회가 비록 연약하여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할지라도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는 기어코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실 터입니다.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22-27절)
예수의 역사성과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 시대를 살아갑니다. 신학의 발전과 함께 이전 시대에 강조되었던 예수님의 초월성과 천국에 대한 내세적 사유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한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관심이 예수님의 인간적인 측면과 물질적인 차원에 집중되는 경향성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균형감각을 상실한 듯 시대의 조류를 따라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자 한계인 모양입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선물로 주시며 편향된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키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의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에 있는 것이라고. 우리에게는 그것을 위해 일하는 길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날마다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걸으십시오.
▧ 오늘의 기도

나로 하여금 물질세계에 사로잡히도록 이끄는 세속적 흐름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기 보다는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확신하는 가운데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걷게 하소서.

근로소득세보다는 재산세의 비율을 높이는 등 양극화를 해소하고 국가부채를 줄여 나갈 수 있는 세금정책이 만들어 지게 하소서.

1 5 3 Questions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오늘 본문에서 나의 신앙과 신학적 지식을 교정하도록 이끄는 내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내가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지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떠오르는 대로 써 봅시다.
Mailing service : SWIM | Tel : 02-796-3217 | Email : swim@swim.org | Update : 김인균 SWIM
큐티 본문 자동 RSS 발행 (by 파파존스@gyongsu)

날마다 주님과 – 현실 직시와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함께 갑니다 (2012-01-20 금)

[ 요한복음 6:1 - 6:15 ]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 본문해설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13) : ‘열두 바구니’는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즉 모든 백성의 필요를 채우고도 남는 능력이 있는 분임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 난 후에도 처음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보다 더 많이 남았다는 점이다. 즉 예수님이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이 무한하고 풍부하다는 점이다.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14) : 이것은 예수님을 신명기 18:15-19절에 언급된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라는 말씀을 성취하실 분으로 여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아 폭력과 착취를 일삼는 로마체제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열망을 드러낸다.
▧ 말씀적용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1-13절)
예수님은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는 물음을 빌립에게 던졌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그리고 교회에게도 던지십니다.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예수님의 이 시험 앞에서 많은 경우 빌립처럼 반응합니다. 한 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은 안드레의 경우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없거나 적을지라도 일용할 양식의 문제, 즉 우리의 현실적 필요를 직시하실 뿐만 아니라 기적을 베푸셔서 해결해 주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의지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드려진 것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주님은 그것으로 많은 사람의 배고픔과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는 기록처럼 그 분이 갖고 계시는 자원은 무한한 때문이지요.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이 가진 자원을 헤아리는 현실적 계산보다는 우리를 사용하시고자 하는 그 분의 뜻과 능력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순종이 요구될 뿐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일상 가운데 베푸시는 기적을 믿고 걷는 걸음이 되십시오.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선택해야 합니다(14-15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 가운데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신 것은 어떤 세상일까요?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제사 제도가 여전히 압도하는 가운데 정의와 정직과 공의가 실종된 현실을 무너뜨리고, 또 로마제국의 정치 체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등 없는 평화(Pax Romana)의 형식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서 예수님을 오랫동안 기다리던 해방자로 여기며 억지로 데려다 왕으로 삼아 정치적 방식으로 자유의 나라를 이루려 한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능할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가능할 일임을 예수님은 아신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피폐한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방식을 철저히 따르는 길을 선택하셨고, 또 몸소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걸음 또한 그러해야지요.
▧ 오늘의 기도

내가 가진 것과 드릴 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의지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그리고 신실하게 드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명절을 맞이해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섬김이 있게 하시고,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을 기억하며 함께 할 수 있는 명절 되게 하소서.

1 5 3 Questions
오늘 본문 속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께서 직시하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루고자 하신 세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빌립과 안드레의 시각을 뛰어넘는 순종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성찰해 봅시다.
Mailing service : SWIM | Tel : 02-796-3217 | Email : swim@swim.org | Update : 김인균 SWIM
큐티 본문 자동 RSS 발행 (by 파파존스@gyongsu)

팔로우

모든 새 글을 수신함으로 전달 받으세요.